그냥 혼자로서는
살 수 없으니 이리저리
살다 보면 울고 웃을 일이
작은 관계에서 시작된다.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로마의 신이다.
알티메데스는 세 개의 얼굴을
가진 희랍의 여신이다.
우린 겉과 속이 많이 다르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 입만 살아있는
그럴듯한 사람들을 이중인격자
또는 두 얼굴이라 부른다.
그러나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자신을 감추고 싶어 하는
본능도 있다.
그래서 가면을 내 얼굴에
내 마음에 만드는지 모른다.
문제는 두 개의 얼굴과
두 개의 머리(생각)에 있다는
것 아닐까?
가면을 쓰고 야누스처럼
사는 사람들,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당황하게 된다.
신뢰하기도 힘들다.
이런 일들이 세상을 끊임없이
만들고 이런 조잡한 이야기에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사람도 방황한다.
공자님도 방황한다.
부처님도 방황하셨다.
예수님도 그러셨고.
그런데 그분들은 방황을
끝내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우리는 방황할 것이고
두개 혹은 세개, 여러개의
탈로 가린채 양면으로
그렇게 살 것같다.